제국의 언어와 저항의 언어 사이에서 ‘나’를 외치다-조선학교의 다중언어 실천 사례에서-
송기찬 리츠메이칸대학 영상학부
1.식민지 지배의 역사와 제국의 언어
발표 제목, 그리고 내용과 관련해서 ‘언어’라는 개념에 대해서 먼저 짚어 보고자 합니다. 저는 라캉의 주체 개념을 빌려서 언어에 종속적으로 주체화되는 개인을 상정하고자 합니다. 즉, 구조로서의 언어는 개인의 외부에 존재하며 개인을 제한하는 억압이며 폭력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세계와 만나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란 재일코리안들의 모어는 일본어입니다. 그러나 그 존재의 역사적 배경에 식민지적 피지배의 기억이 자리잡고 있는 재일코리안들에게 그들의 모어는 제국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제국의 언어로서 일본어는 식민지적 지배와 억압의 언어이며 불행히도 이것은 재일코리안의 일상을 지배하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먼저 재일코리안에게 있어서는 모어이자 ‘제국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일본어를 처음 배웠을 때에 가장 놀랐던 것은 일본어의 ‘존재사’의 존재와 그 활용문법이었습니다. 일본어의 존재사를 보지요. 한국어로는 ‘있다’, 영어로는 ‘Be’로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일본어의 존재사는 그 존재하는 대상의 어떤 특성에 따라서 관습적으로 두 가지 형태가 사용됩니다. 그 대상의 특성이라는 것은 바로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같은 물고기라고 해도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다른 형태의 존재사가 사용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매우 즉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일본어를 말한다는 것은 그 대상의 생명을 판단하는 실천이기도 하는 것이며, 이것은 일본어와 일본문화가 생명에 매우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러한 문법적 특성을 가진 언어는 아마도 일본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선민중의 저항이 심했기 때문에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일본제국은 상당한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조선인이 살해되었습니다. 저는 명령에 따라 이러한 살인행위에 가담할 수 밖에 없었던 일본군인들이 경험했던 것은 어떤 것이 었을지 궁금합니다. 생명에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일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를 지키겠다는 대의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무참하게 살해해야 했을 때,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어쩌면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을까요?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생략하지만 1912년에 발표된 모리오가이의 소설 네즈미자카를 읽으면 식민지 조선이나 중국에서 일본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죄의식과 트라우마, 공포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4년 뒤, 관동대진재의 조선인 학살 사건이 일어납니다. 저는 어쩌면 1909년에 조선 땅에서 저질렀던 학살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집단적 공포심과 광기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십수년 전에 조선땅에서 저질렀던 살인의 기억은 생명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죄의식으로 남아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제노포비아(외국인 공포증, 혐오증)로 폭발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 또한 식민지배의 기억이 남긴 우리 안의 포스트콜로니알리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일본형 제노포비아의 시작점을 우리는 식민지배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소개하는 조선학교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의 현장영상에서는 조선사람에 대한 헤이트 표현의 하나로서 ‘백정’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례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백정이라는 말은 도축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조선의 전통적피차별민의 대명사격인 말입니다만, 현대 한국에서는 이미 차별적인 의미가 거의 사라진 말입니다. 따라서 현대 한국인에게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다지 상처를 받을 사람은 없겠지만 이 표현의 일본어에 해당하는 말을 일본에서 사용했을 경우에는 그 의미가 달라지겠지뇨. 즉, 이것은 일본형 제노포비아와 증오범죄가 일본문화안의 차별구조에 바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빛과 어둠, 정결함과 부정한 것, 천황과 피차별부락민, 이러한 차별의 이분법적 구조 속에서 일본적 위계질서가 성립되고 그것에 포섭되는 것을 내적 국제화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일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잘 아시는 분들도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일본에서 진행중인 조선학교에 대한 노골적인 배제와 차별에 대해서는 유엔아동인권위에서 시정권고가 내려진 상태이지만, 일본정부는 반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학교를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진행중인 제국의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국가를 가지지 못한 재일코리안
다음으로 재일코리안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조선학교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재일코리안을 어떤 의미에서 ‘국가를 가지지 못한 존재’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금메달은 일본이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국제올림픽위원회 홈페이지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금메달을 딴 선수는 손기정, 조선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국적은 일본이었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귀화했을까요? 아닙니다. 전쟁으로 중지된 1940년도 동경올림픽의 기념엽서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당시의 조선은 일본제국의 일부였고 조선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국적도 국제법상 일본이었던 것이죠.
1945년 8월 16일 현재, 일본에는 200만이 넘는 구식민지 조선출신자들이 살고 있었고 이들의 국적은 국제법상 여전히 일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언제부터 일본국적자가 아니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일본국적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47년의 외국인등록령의 시행 이후 입니다. 1947년 5월 2일 공포와 동시에 시행된 것을 간주한 이 명령은 소화천황의 마지막 칙령이기도 했습니다. 1947년 5월2일 갑자기 공포와 동시에 시행된 이 명령의 이유는 그 다음날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헌법에 의해 보장된 일본국민의 권리를 조선출신일본국적자들에게 부여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연합군사령부에서는 재일조선인들의 국적을 여전히 일본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연합군사령부의 이러한 이해를 이용해서 당시의 일본정부는 조선학교들에 대한 탄압을 가하고 폐쇄해 나갑니다. 명분은 일본에 남은 조선사람들은 일본국적자이기 때문에 공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본역사상 처음으로 ‘공립 외국인학교’라고 할 수 있는 공립조선인학교가 탄생하게 됩니다. 탄생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폐쇄한 조선학교의 건물을 그대로 몰수해서 거기에 일본인 교사를 파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조선학교가 근대이후 일본의 교육사에서 공적인 교육기관이었던 사실이 있다는 것은 최근의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 무상화 배제 문제를 생각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일본사회 속에서 조선학교가 가지고 있는 공공성의 부분입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이후 일본정부는 외국인 등록법을 만들어서 확실하게 구식민지 출신 일본국적자들의 일본국적을 박탈합니다. 그러면서 1947년의 외국인등록시에 사용했던 국적란의 조선이라는 기호가 국적으로 고정되면서 재일코리안은 사실상 무국적자가 되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사람은 더 이상 일본국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립조선인학교는 폐지됩니다.
신헌법에서 보장한 일본국민의 권리에서 배제시키는 조치를 취해놓고도, 재일조선인은 일본국민이기 때문에 일본학교에 다녀야 한다며 조선학교를 폐쇄해놓고, 일본학교에서 조선인들을 거부한다고 해서 폐쇄한 조선학교로 공립조선인학교를 만들었다가 강화조약 이후에는 이제는 일본국민이 아니니까 공립조선학교를 폐지한다. 이것이 해방후 일본에서 조선학교가 경험한 일들이었고 이것은 이후 조선학교의 분리주의적 경향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무국적자란 원래 주민이었던 사람들의 자국의 영토로부터 쫒겨나, 국가의 성원이라는 신분을 빼앗기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 진다고 하는데, 재일코리안의 경우가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재일코리안의 재류자격은 “일본국과의 평화조약에 의거하여 일본의 국적을 이탈한 자 등의 출입국관리에 관한 특별법”에서 정한 ‘특별영주자’가 되게 됩니다만, 이 법률의 이름에서도 말해 주고 있는 것은 적어도 1952년 강화조약 당시까지 일본에 남아있던 조선인들이 일본국적자라는 사실을 일본정부도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3.저항의 언어와 정체성의 정치
이같은 지속되는 제국의 언어 속에서 재일코리안이 할 수 있는 저항이라는 것은 민족교육이라는 정체성의 정치였습니다. 오사카시에는 1948년 조선학교 폐쇄 당시에 조선인들과 행정당국이 작성한 각서에 의거해서 일본의 공립학교 안에서 민족교육을 할 수 있는 학급, 즉 민족학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33개의 민족학급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오사카를 중심으로 약 180개의 공립 초중학교에 민족학급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민족학급에서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게 하려고 하지만 이미 일본문화에 의해 일본적 위계질서를 받아들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열등감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다문화 공생의 담론이 진전되면서 민족학급 측에서는 ‘민족’이라는 말을 쓰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민족 개념으로는 포섭할 수 없는 다양한 재일코리안들이 존재하게 되었고, 또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도 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족학급의 민족교육에 있어서는 민족이나 나라라는 말을, ‘루트를 가지는’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게 되었습니다.그러나 국기와 국가가 강제되는 일본의 공교육환경 속에서 ‘루트를 가지는 것’이, 국민국가의 정당한 성원으로서의 ‘일본인’과 과연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리주의적 교육환경을 고집하고 있는 조선학교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처음 조선학교에 갔을 때, 저에게는 조선학교는 매우 억압적이고 강압적인 교육을 하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운동회 때 이런 초상화를 걸어놓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 나서 자란 저에게는 거의 공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참여관찰을 거듭하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상당히 억압적인 교육내용과는 반대로 매우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개인들이 발견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연구의 중점은 이러한 모순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저항의 언어와 제국의 언어의 공존이 만들어내는 조선학교 문화의 특수성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조선학교는 일본 최대의 외국인학교 조직입니다. 조선학교의 조직과 교육과정 등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통일된 교과서와 중앙에서 관리하는 공통된 교과과정에 의해서 조선학교는 일본안에 그들만의 ‘국민교육 환경’을 구축해 놓았다는 점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 처럼, 재일코리안에게 국가라는 것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조선학교가 구현하고 있는 국민교육의 환경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교육의 환경을 유지하고 조선학교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중심에는 저항의 언어로서 조선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선학교의 교과과목을 보면 일본어 수업 이외의 모든 수업을 조선어로 하고 있습니다. 병설 유치원과 보육반에서도 조선어를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조선어교육을 받는 것은 초급학교에 입학한 이후입니다. 초급학교부터 집중적으로 조선어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상생활도 조선어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초급학교 6년간을 졸업하면 상당한 조선어 표현이 가능한 수준이 됩니다.
4.저항의 언어에서 해방의 언어로: 조선학교의 다언어 실천과 절합(articulation)의 지혜
조선어는 공식언어로서 조선학교의 공적영역을 지배하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또한 공적영역에 대한 조선어의 지배는 매우 억압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학교안이라고 해도 사적영역의 회화는 재일코리안의 모어인 일본어로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상황에 따른 사용언어의 전환은 조선학교의 독특한 언어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조선학교의 다언어 실천의 사례와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자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조선학교 조선어의 특징은 일본어와 조선학교의 우리말이 습합된 형태의 ‘우리본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본말은 조선학교 학생과 교직원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조선어에 대해서 유머러스하게 부르는 말입니다.
우리본말이라는 것은 조선학교의 조선어와 일본어가 섞여서 만들어지는데요, 기본적으로 언어접촉에 의한 언어간섭 현상과 그 결과를 말합니다조선어와 일본어의 언어경계를 생각해 볼 때, 조선학교의 학생에게 있어서 일본어의 영역은 모어의 세계이며 학교 밖 일상생활의 영역이 됩니다. 그와 반대로 조선어의 영역은 학교 안의 일상이며 2차적으로 습득한 언어로 이루어지는 연기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어떠한 조선어 단어의 발음이 일본어의 어떠한 발음과 유사성이 인정될 경우, 해당 조선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발음이 유사한 일본어 단어의 의미로 미끌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조선어 단어의 의미와 일본어 단어의 의미가 보여주는 낙차가 크면 클 수록 커다란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조선어 사용을 의무화한 민족교육이 만들어내는 억압적이고도 진지한 분위기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조선학교의 학생과 교원들은 이러한 의미의 미끄러짐을 이용해서 종종 억압적이거나 어색한 상황을 벗어나는 비상구를 만들어내고는 합니다.
예를 들면 조선어로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제창하는 것처럼 약간 엄숙한 상황 속에서, 노래의 가사를 통하여 이러한 비상구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통해서 학생들은 조선학교의 교육이 만들어내는 억압적인 상황을 피해 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학교 안에서 일부러 일본어를 사용함으로 이루어지는 저항도 있습니다. 반대로 학교 밖에서 일본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조선어를 사용한 ‘비밀 대화’를 통해서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일본 사회의 압력을 피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죠.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회화는 일본어이지만, 조선학교 학생들은 일본어로 회화를 하면서도 자신을 지칭하는 대명사는 조선어의 ‘나’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조선어와 일본어 양 언어에 지배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실천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조선학교의 학생들은 일본어와 조선어로 구성된 두 개의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두 개의 언어에 의한 언어실천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천의 구조로부터 각각의 세계 속에서 부딪치는 억압을 회피하는 비상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이너리티의 정체성 정치가 가지고 있는 한계, 즉 마이너리티의 집단에 가해지는 외부의 폭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집단의 내부에 대한 억압을 만들어내는 모순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전망할 수 있습니다.
조선학교의 학생들이 보여주는 다언어실천과 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다중적 자아의 존재양식은 다음의 그림과 같습니다.
그림 1. 조선학교 학생과 교사의 언어실천과 다중적 자아의 존재양식
A : 학교공간에서 조선어로 표현되는 자아
B : 일본사회 속에서 조선어로 표현되는 자아
C : 일본사회 속에서 일본어로 표현되는 자아
D : 학교공간에서 일본어로 표현되는 자아
학교와 학교 밖으로 공간을 나누고 조선어와 일본어를 축으로 언어를 나누면 그림처럼 4가지 형태의 자아의 존재 가능성이 확인됩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자아의 표현을 바꾸는 것을 통해서 비로소 개인의 아이덴티티는 집단 내부의 억압과 외부 세계의 폭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덴티티의 관리는 단순히 다언어적 실천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아이덴티티의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두 개의 세계의 실재성과, 두 언어의 높은 구사 능력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어와 일본어에 대한 조선학교 재일코리안의 언어구사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확인한 바 있습니다만, 조선학교의 실재성은 일본사회의 미러이미지를 통해서 확보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소풍가는 날 비가 오지 말라고 헝겊인형을 만들어서 매다는 것처럼 조선학교의 교육실천 안에는 일본문화적인 요소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민족적인 것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긍정적 아이덴티티를 전해 주고자 하는 민족학급에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선학교는 일본사회에 대한 물리적인 분리주의를 말하고는 있지만 그 분리된 공간 안에 거울 이미지로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고 그것은 당연하게 일본 사회를 닮을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 사회의 많은 문제들 또한 조선학교 안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조선학교의 다른 점은 이중언어의 실천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유가 아이덴티티 관리로 이어져, 이러한 문제들을 회피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개의 정체성의 정치가 그러하듯이 조선학교의 교육에는 여전히 내부의 개인에게 억압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확인한 아이덴티티의 관리 능력에 의해서 그러한 억압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선학교에서 길러지는 아이덴티티 관리 능력은, 경계를 뛰어넘고 외부의 억압에 대항하면서도 내부의 본질주의적 억압을 회피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으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모순을 포용하면서 이질적인 것을 연결해 생을 이어가는 절합(‘분절=접합’, 즉 분절을 상정한 접합)의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영토와 같은 본질주의적 수사법에 제한되는 국민국가적 감수성을 넘어서 진정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영을 상상할 수 있는 실천적인 지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5.일본사회와 조선학교
마지막으로 조선학교의 존재가 일본사회에 던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조선학교는 학교 공동체가 살아있는 학교입니다. 자주적인 학교운영의 결과 공동체가 없으면 학교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조선학교의 환경은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긍정적 자아를 키워 나가는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공동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교육실천의 사례로서 조선학교는 지금의 일본학교에도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학교의 교육실천에 대한 폭넓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조선학교의 교육에 대한 연구에서 얻어진 이해는, 경직된 교육이나 정치가 유발하는 본질주의적 억압, 혹은 강박을 회피할 수 있는 시민적 지혜를 길러 줄 것입니다.
또한 조선학교는 일본사회의 진정한 다문화 공생을 향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결핍이 지금의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경쟁력 약화를 불러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조선학교라는 존재가 일본에 있다는 것은 일본사회의 미래를 위하여 참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조선학교의 공공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사회에 있어서 조선학교의 시민권회복은 일본이 진정으로 평화와 인권을 지키는 나라가 되었다는 상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