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역사적 흑인대학교에 있어서의 다문화 공생의 노력-아칸소대학 파인 블러프캠퍼스에서의 일본어 교육을 통해서-
江口真規(에구치・마키/쓰쿠바대학교 인문사회계・조교)
1.처음으로
020년 조지·프로이드씨를 비롯한 경찰관에 의한 흑인의 살해 사건을 계기로 Black Lives Matter(BLM)라고 불리는 인종차별 항의활동이 퍼졌다. 이 움직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고 일본에서도 2020년 6월 도쿄에서 3500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BLM를 통해서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는 것 또는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팬더믹 상황에서 마이너리티의 존재가 사회, 경제적인 영향을 받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된 분도 많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접하는 언론이나 SNS 정보에서는 흑인들이 어떤 차별을 받고 어떤 불안을 느끼고 있는지 한사람 한사람의 아픔과 슬픔의 내용은 좀처럼 전달되지 않는다. 거기서는 어디까지나 「흑인」으로 일반화되고 그 안에 있는 여러가지 차이--성별, 성적성향, 연령, 직업, 살고 있는 지역 등은 사상(捨象)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과도 관계가 있지만 미국의 인종문제는 백인과 흑인의 문제이며 일본인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닛신식품 CF에서 오오사카 나오미 선수의 피부색 묘사나 NHK의 애니메이션 동영상에 스테레오타입적인 흑인의 표상이 나타나는 등 일본에서는 이 문제에 무지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차별의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미국에 있어서의 인종차별의 역사와 교육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 흑인 대학교(Historically Black Colleges and Universities, HBCU)의 존재를 간과할 수는 없다. 본 발표에서는 발표자의 HBCU에서의 일본어 교육의 경험을 바탕으로 HBCU가 설립된 경위와 특히 미국의 남부지역사회에서 맡고 있는 역할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자료나 데이터로부터 보이는 것뿐 만이 아니라 흑인의 학생이 인종차별에 직면하면서 어떻게 학생 생활을 보내고 있는지 그 예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늘 심포지엄에도 참가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학생 여러분과 같은 연령의 흑인 학생인 예도 있으므로 꼭 여러분의 과 친구들과 같은 감각으로 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매년 2월은 흑인역사월간(Black History Month)으로 전미 각지에서 흑인의 역사나 문화에 관하여 배우는 행사등이 행해진다. 오늘 2월 6일에 이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리고 본 발표에서는 미국의 「흑인」(black)에 대해 언급할 때 역사적인 배경을 고려하면서 보다 공정한 표현으로 생각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 용어도 사용하기로 한다.
2.아칸소대학 파인 블러프캠퍼스에 대하여: HBCU의 역사
먼저 나 자신이 HBCU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게 된 경위와 아칸소대학 파인 블러프캠퍼스(University of Arkansas at Pine Bluff)에 대해 HBCU의 역사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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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칸소대학 파인 블러프캠퍼스(UAPB)에 관하여
나는 2012년부터 2013년에, 풀브라이트 어학 어시스턴트 프로그램(Fulbright Foreign Language Teaching Assistant, FLTA)에 참가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대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영어의 교수기술을 높이고 미국 문화와 습관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쌓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FLTA에는 "cultural ambassador"로서의 역할이 있으며, 수업뿐만 아니라 과외활동이나 지역 사람들과의 교류와 같은 활동도 포함된다. 미국 국무성교육문화국에서 운영 되어 있는 장학금 프로그램으로 1968년에 시작되어 내가 참가한 해에는 50개가 넘는 국가에서 400명 이상의 참가자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의 하나는 행선지의 대학교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응모가 있던 대학교와 FLTA 응모 시의 정보 등을 바탕으로 파견지가 결정된다. 내가 파견된 곳은 아칸소대학 파인 블러프캠퍼스였다. 주 내에 다섯 개 있는 아칸소대학교 시스템 중 하나인 학교이며 주립 대학교이다. 대학교의 역사는 18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처는 그 지역의 흑인 학생들을 위한 칼리지로 설립되었다. 모릴랜드 그랜트법에 의해 1890년에 랜드 그랜트 대학교(land-grant university, 토지 부여 대학교)의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연방정부가 소유하는 토지를 주정부에 공여해 농학이나 군사학, 공학의 교육/연구를 위해 설립된 고등교육 기관이다. UAPB는 현재 종합대학으로서 4개의 학부가 있는데 지역의 농업이나 산업(특히 메기 등의 양식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교육 및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내가 체재했을 때는 학부생 ·대학원생을 합해 약 2800명의 학생이 재적하고 있었다. 미국의 대학교 중에서는 소규모 대학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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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CU에 관하여
이 대학의 큰 특징은 지금 말한 바와 같이 원래는 흑인들을 위한 대학교였다는 것이다. UAPB는 현재 미국에 101개 있는 역사적 흑인대학교(HBCU) 중 하나다. HBCU에 관하여 들어본 적이 있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HBCU가 설립된 경위를 여기서 잠시 설명하겠다.
미국에 있어서 흑인 노예의 역사는 17세기 동부 버지니아 식민지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노예가 상륙하면서 시작되었다. 담배와 면화의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백인 농원주에 의한 흑인 노예 사역이 확산해 갔다. 특히 미시시피 강 유역에서는 노예를 이용한 면화 재배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잘 아신 것이라 생각한다.
1861년부터 1865년 남북전쟁이 일어나 노예제 존속을 주장하는 남부 11개 주와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 23개 주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1862년 당시 미국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링컨에 의한 노예해방선언이 나와 북부가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미국 헌법의 수정으로 노예제 폐지, 노예의 권리가 확보되고 인종을 불문하고 법에 따른 평등이 정해졌다.
그러나 전후의 남부에서는 흑인이 백인과 똑 같은 공공 시설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짐·크로우법이 가결되어 1896년의 프레시 대 퍼거슨 재판에서는 이것이 인종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분리 평등(separate butequal)이라는 원리 아래 남부의 각 주에서는 학교나 식당, 버스, 화장실와 같은 공간과 교육, 의료, 결혼 등의 서비스와 제도에 있어서 백인과 흑인을 분리하는 정책이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UAPB의 전신인 대학교가 흑인 학생들을 위해 설립된 것도 이 기간에 해당하는 1870년대였다.
인종분리 정책의 전기가 된 것은 겨우 195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공민권 운동의 고조를 틈타 짐 크로우법의 재판투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1954년에는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재판에서 공립학교에서의 인종분리는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즉 지금까지 백인만이 다닐 수 있었던 학교에 흑인도 입학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흑인을 위해 설립된 대학교에도 흑인 이외의 학생들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UAPB에도 흑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의 학생들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경위를 통해 「역사적」흑인대학교가 미국 내에 탄생하게 되었다. HBCU는 공립/사립을 포함해 미국 전역에 현재 101개가 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동부와 남부의 대학교가 많이 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구 비율이 많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부대통령 카마라 해리스씨가 HBCU의 하워드대학교 출신이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현재는 HBCU라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 비율이 높다고는 할 수 없으며 그 이외의 학생이 많은 대학교도 있어 학생의 인종 구성은 지역이나 대학교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내가 체류했을 당시의 UAPB에서는 93%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4%가 백인, 유학생이 1%, 나머지 2%가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아시아계로 되어 있었으며 대부분의 학생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유학생도 아프리카나 카리브해 국가 출신 학생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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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칸소주 파인브러프시에 관하여
UAPB는 아칸소주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흑인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여기서 아칸소에 HBCU가 존재하는 의의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아칸소주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나 자신도 파견지가 정해졌을 때는 아칸소가 어디에 있는지, 또한 그 읽는 법(Arkansas)조차 몰랐다. 아칸소주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출신지이자 세계 최대 슈퍼마켓 기업인 월마트사(Walmart)나 이곳도 세계 최대 규모의 식품가공업체인 타이슨 푸즈(Tyson Foods)의 본부가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칸소주 전체의 인종 구성은 백인이 8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2할이 되고 있지만, 파인브러프시에서는 이 비율이 역전해 백인이 2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8할이 된다. 이것은 미국 전체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구 분포를 보면 알 수 있다. 2018년 현재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13%이며 특히 동부에서 남부에 걸쳐 인구 대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 일대는 「블랙 벨트(Black Belt)」로 불리며 앞서 언급한 플랜테이션 농업의 역사와 관련돼 있으나 1860년과 비교해도 인종 구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아칸소주 동남부에 위치하는 파인브러프시는 예전부터 남쪽의 주에서 해방노예들이 모여든 도시였다. 이처럼 아칸소주 내에서도 북부와 남부, 또 미시시피 강 유역에서 인종 구성이 다르다.
아칸소의 역사에서 주목받는 것은 1957년에 일어난 리틀록 고등학교 사건(Little Rock Nine)이다. 리틀록은 아칸소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주도이다. 1954년 브라운 대 퍼거슨 재판의 위헌 판결을 계기로 그동안 백인만 다니던 리틀록센트럴 고등학교에 9명의 아프리카계 미국 학생이 다니게 되었다. 이들 9명이 처음으로 등교하는 그날 백인들에 의한 폭동이 일어나 이를 진압하기 위해 주지사의 명령에 따라 주(州)병사들이 동원되었다는 사건이다. 이것으로 아칸소에서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있는 것을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그런 경향은 강하게 남아 있다.
파인브러프시는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소도시」라고도 불린 적이 있는 지역이다. 2010년의 범죄 발생률 데이터에서는 같은 규모의 354개 도시 중 미국 전역 하위순위 4등이었다. 흔히 일본인이 해외에 나갈 때는 「한밤중에 혼자 다니지 말라」라는 조언을 받지만 그런 수준은 아니다. 낮에도 거리를 걷는 사람은 없다. 미국 내에서도 빈곤층이 많이 사는 지역이며 다운타운에 있는 점포는 대부분 셔터를 닫고 교외에 있는 월마트 점포 주변만이 간신히 번창하고 있었다. 강도나 총격 사건, 마약 매매 같은 위험한 사건은 다반사였다. 내가 체재한 1년 동안만 해도 친구의 차가 도난 당했고 친구의 집이 강도 피해를 당하고 가까운 극장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나 여교사가 강간당하고 학생 한 명이 총기 오발로 목숨을 잃었다.
3.UAPB 학생들: 일본어 교육활동을 통해
지금까지 UAPB가 설립된 경위와 지역적 배경을 살펴보았다.여기서부터는 내가 담당한 일본어 공부반 학생들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UAPB의 비즈니스경영학부에 소속하였고 담당한 과목은 「일본어」가 아니라 「인터내셔널 마케팅」수업의 일부분으로 개강된 것이었다. 따라서 학생들은 일본어나 일본 문화를 배우기 위해 이 수업을 이수하는 것이 아니다. 학부 선생님들과 상의한 결과 UAPB 학생들은 미국 이외의 문화를 의도적으로 접할 기회가 적고 또 언론의 영향으로 편향된 지식을 습득하기 쉽기 때문에 일본어를 습득하기보다는 외국어나 해외 문화를 배우는 자세를 갖출 수 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FLTA 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수업도 기본적인 일본어 인사와 자기소개, 히라가나 읽기 쓰기 외에 학생들이 일본에 관하여 알고 싶어 하는 주제를 수렴하고 그것에 대한 강의와 토론을 하는 형식이었다. 주제로는 일본의 자동차, 패션, 음악, 경제, 관광업, 비즈니스 매너 등이 있었다. 수업은 2~4학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 퇴직 후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 육아 중인 아이와 함께 참여하는 학생 등 넓은 연령층의 학생이 있었다. 비즈니스학부 학생뿐만 아니라 일본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잘 아는 학생들이 어디선가 모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일본어 과외활동으로 마키즈시(김밥) 파티나 유카타 입기, 영화감상, 만화강독, 종이접기 등의 활동도 했다.
학생과의 신뢰 관계를 쌓고, 또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수업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 처음에는 시간이 걸렸다. 동내나 대학에는 다른 일본인이 없는 가운데 나의 영어도 더듬거리면서 낯선 「타자」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조금씩 서로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듣거나 하는 가운데 조금씩 익숙해졌다. 이는 미국 남부문화의 이면성이라 할 수 있는 부분으로 인종차별이 뿌리 깊이 남아 있고 가난하며 범죄발생률이 높다는 부정적 측면이 강조되는 반면 「서던/호스피탤리티」(Southern hospitality)라는 말이 있듯이 여기에 온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해 주는 풍토도 있다. 이것만은 온라인으로는 전해지기 어렵고 유학의 묘미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 장소에 가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서 얻은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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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CU를 선택한 이유
UAPB 학생들은 아칸소나 인근 주 출신이 많았으나 이 중에는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 출신 학생들도 있었다. 왜 UAPB에 왔는지 물어보니 HBCU를 다니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자긍심과 자신감을 얻고 싶다는 학생들이 있었다. 다른 대학교와 비교했을 때 UAPB 교육의 목적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그 정체성을 습득해 스스로를 긍정하는 것과 동시에 그 이외의 다양성도 똑같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긍정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자라 차별을 받아왔기 때문에 대학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많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이유로 HBCU를 선택한 학생들도 있다. 파인브러프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출신지역보다 살기 좋다고 느껴져 졸업 후도 시내에 남는 학생도 있다. 가족 중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하여 출신지역도 떠나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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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고 있는 불안감
어느 날 일본어 수업에서 일본의 도도부현(都道府県)이나 지리에 관한 강의를 한 뒤 여행을 가보고 싶은 장소를 조사해서 상상으로 여정표를 작성하는 과제를 냈다. 그 때 학생이 "일본에 가면 흑인은 차별을 받느냐"고 질문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들은 미국 내에서만이라도 가는 곳이나 사는 곳에서 자신들이 차별받지 않을까 항상 불안해하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 이외의 나라에 가본 적이 있는 학생은 가족이 군관계자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로 없었지만 방문 목적지도 차별이 적다고 생각되는 곳이나 마찬가지로 흑인들이 많은 지역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방문한 미국외 여행지에서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진을 찍힌 것에 대해 「나는 구경거리가 아니다」면서 충격을 받은 학생도 있었다
이 질문을 받고 일본에서의 인종차별 문제나 백인/흑인뿐만 아니라 재일한국인/조선인이나 아이누민족, 외국인, 피차별부락 등 일본 사회 속에 있는 차별에 대해 강의를 하기로 했다. 학생들은 주로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미국의 인종차별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다른 차별이 있다는 것을 배워갔다.
이와 관련해서 UAPB를 통한 학생들의 해외파견 추진에 관하여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들은 경제적 문제와 가족간의 연계가 강하기 때문에 미국을 장기간 떠나는 일에 부정적인 반응이 제기되기 쉬워서 해외유학은 촉진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을 위한 장학금 제도가 정비되면서 UAPB에서는 매년 몇 명 정도가 반년~1년 정도 유학을 가게 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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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70대 학생의 말
한 70대 학생의 말이 마음에 남아 있다. 그 학생은 일을 해서 충분한 저축을 많이 해서 대학교에 아트를 배우러 다니고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대학에 다닐 돈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블랙에게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그는 내 손을 굳게 잡으면서 말했다. 자신들이 놓여 있는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는 교육밖에 없다고 호소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닌 입장에서 UAPB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나에게 고마움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교육이 필요한 것은 과연 차별을 받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뿐인 것일까. 관점을 달리하면 인종차별을 행해 온 측에 대한 교육이 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UAPB에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활동이나 강연회가 열릴 때에는 대학교에 백인우월주의단체들이 협박편지를 보내온다고 한다. 동네 레스토랑에도 백인만 들어갈 수 있다는 상징물을 내건 가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체류하고 있을 때는 그와 같은 차별을 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육할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4.끝으로: 누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아칸소에서에서의 경험을 거쳐 귀국 후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들의 현주소를 알리고자 대학교 수업과 미국대사관에서 홍보활동을 통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019년 2월 흑인역사월간에는 UAPB에서 멘토이자 룸메이트였던 파멜라 무어 박사(UAPB 글로벌 인게이지먼트 부학부장)를 초빙하여 당시 근무하던 아키타현립대학교와 도쿄의 미국대사관의 두 곳에서 미국의 남부문화에 관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도쿄회장은 정원이 80명이었고 만원이 되었다. 당시는 트럼프 정권으로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단에 관한 관심 또는 남부의 문화, 사회에 대한 생생한 정보가 일본에서는 입수하기 어려운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느꼈다. 2019년에는 물론 신형 코로나도 없고 BLM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2년 후인 2021년의 현재는 아마도 일본에서도 미국 인종차별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높아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연회에서 무어 박사는 미시시피주 출신 노벨 문학상 작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중 유명한 구절을 인용했다.
남부의 이야기 좀 해줘라. 남부는 어떤 곳이야? 남부에서는 어떻게 살아? 왜 남부 따위에서 살고 있는거야? 그보다 도대체 남부 사람들은 왜 살아 있는거야?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미시시피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한 무어 씨는 똩같이 남부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일본인인 나에게도 자주 같은 질문이 던져진다. 내가 남부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경험을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그 중에는 국제관계학 전문가인 미국인으로 많은 나라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있는 분도 있는데 남부, 심지어는 아칸소 등에는 거의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의 현실을 보면서 역설적이긴 하지만 일본 국내의, 혹은 더 가까운 대학교 안이나 교실 안,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이웃 간에 숨어 있는 차별 문제의 중요성에 보다 직면해 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인인 내가 아칸소주 파인브러프시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생활을 「대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것을 조금이나마 전하지 않으면 그 현실은 이야기되지 않는 채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오늘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심포지엄이 미국에서의 인종차별 현주소를 아는 것과 더불어 와타나베 선생님과 송 선생님의 발표와 함께 우리의 가까이에 있는 차별에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